해외 교류 프로그램 참가 수기 공모전

백지원(화학공학부)

수상자 사진

 동상
상격 동상
주제 도망에서 도전으로
학과 화학공학부
이름 백지원

나는 코로나 세대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캠퍼스에 가보지도 못한 채 1학년을 마쳤고, 2학년에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불성실한 생활을 이어갔다. 성적도 바닥을 쳤고, 고등학생 때 꿈꿨던 대학 생활과는 전혀 달랐다. 이대로 졸업하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찾아왔고, 결국 도피성 휴학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부모님은 내가 다시 복학하지 않을까 걱정하셨지만, 공부를 잘해보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라고 설득하며 기회를 얻었다.
휴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여러 나라를 여행했고, 특히 호주에서의 2주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갈망이 강하게 생겼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지 못하는 답답했던 순간들이 나를 자극했다. 무언가 배우고 싶고, 바뀌고 싶다는 마음이 진지하게 자리 잡았다. 귀국하자마자 나는 학교 공지 사항을 샅샅이 살펴보았고 그곳에서 OPP라는 단기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그러나 저학년 우선 선발, 낮은 학점이라는 현실적 조건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학점을 올려서 꼭 가자” 이것이 나의 새로운 목표였다. 복학 후 나는 정말 절실하게 공부했다. 2점대 학점을 3.9까지 끌어올렸고,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자기소개서를 간절하게 썼다. 감사하게도 한 달간 미국 네브래스카 오마하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합격 메일을 받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기대했던 미국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했다. 빨래, 장보기, 요리, 청소, 공부, 과제까지 작은 일상조차 내가 직접 선택하고 해내야 했다. 사소하지만 늘 부모님이 대신해주셨던 것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도움 속에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누군가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던 내가 스스로를 책임지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독립심이 자라난 만큼 부모님께 드는 감사함도 커졌다.
오마하에서의 생활은 새로운 문화와의 만남으로 가득했다. 독립기념일에는 영남대에서 교환학생을 했던 미국인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마당에서 직접 폭죽을 쏘며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 폭죽은 늘 멀리서 구경만 하는 줄 알았는데, 직접 쏘아 올리는 짜릿함은 그날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어우러져 나에게 정말 특별하게 다가왔다. 같은 수업을 듣던 일본인 친구들을 기숙사에 초대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김치찌개와 삼겹살을 대접하고, 친구들이 준비해온 교자와 야끼소바를 함께 나누어 먹었다. 각 나라의 연애 문화를 이야기하며 가깝지만, 또 먼 나라라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또 다른 미국인 친구의 생일 홈파티에서는 모두 하얀 티셔츠를 입고 모여 서로의 옷에 그림을 그려주며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다. 그러던 중 흘러나온 Cupid Shuffle이라는 노래에 맞춰 다 함께 춤을 추었는데,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국민체조 같은 춤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따라 하기 어색했지만, 어깨를 맞대고 같은 동작을 하는 순간 서로 다른 언어와 배경을 가진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그 날 나는 마치 하이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UNO(University of Nebrasks Omaha)에서 다양한 수업을 들었지만, 특히 매주 두 번씩 진행된 American culture 수업을 정말 좋아했다. 또래의 미국인 친구들과 사회적 이슈를 토론하고, “집 안에서 신발을 진짜로 신는가?”, “너도 총이 있어?”, “정말 바깥 화장실에서는 양치를 하지 않는 거야?”, “ 첫 데이트 때는 무엇을 해 ?”와 같은 소소하지만 내가 진짜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미국에 대해 막연히 가졌던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었고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대부분의 수업에서는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함께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발표를 준비하고 토론을 했다. 다른 전공과 언어를 쓰는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며 대화할 수 있는 시간들이 내게는 너무 특별했다. 무엇보다 영어로 발표를 해낸 경험이 나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다. 이번 학기 전공 수업 오리엔테이션에서 교수님께서 두 번의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하셨다. 예전의 나였으면 바로 수강정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영어로도 해냈는데 한국어로 못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발표가 두렵지 않다.
일상에서도 새로운 배움이 많았다. 어디서든 건네는 “Thank you”, “How are you?” 같은 스몰토크는 처음에는 부담스럽고 어색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넬 만큼 자연스러워졌다. 호주에서는 “Sorry”에 “No worries”라는 답을 자주 들었는데. 미국에서는 “You’re fine”이라는 대답이 일반적이었다. 같은 영어를 사용하더라도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실감해 신기했다. 식당에서는 태블릿으로 주문하려다가 실수로 유료 게임을 눌러버려 웃음을 산 적도 있었고, 조금이라도 음식이 남으면 자연스럽게 포장해 가는 문화 역시 새롭게 다가왔다. 이런 사소한 경험 하나하나가 내 사고의 틀을 넓혀주었다.
한달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오마하에서의 한 달은 마치 한 여름밤의 꿈처럼 짧고도 찬란한 시간이었다. 낮에는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부딪히며 배우고, 밤에는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하며 마음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 나갔다. 매일이 새롭고 두근거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나 꿈처럼 달콤했던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든든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지금은 우리 학교로 교환학생을 온 독일인 친구 Tim의 버디가 되어 그의학교 생활을 돕고 있다. 예전의 나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도망치고 싶어했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학교생활을 돕는 사람이 되었다.
제목처럼 “도망에서 도전으로” 이 한 문장이 내가 OPP에서 겪은 모든 여정을 가장 잘 담아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소중한 이야기가 앞으로 해외 교류 프로그램에 도전하려는 학생들에게 작은 용기와 동기가 되기를 바란다.

참가사진